[나의 치료일기] “오늘도 별일 없었다”…직장암 치료 끝에 되찾은 평범한 하루

마흔에 만난 직장암, 항암·방사선·수술과 장루복원까지…다시 교단에 선 암행권 ‘어피치’님의 이야기

 

2025년 2월, 나는 암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진단명은 직장암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제 갓 마흔 살이 되었는데 암이라니.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평소 운동도 꾸준히 했다. 180cm에 75kg을 몇 년이나 유지하고 있었다. 

 

나름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기에 암이라는 진단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왜 하필 나일까?’

그런데 더 큰 걱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진단 과정에서 촬영한 PET-CT에서 왼쪽 쇄골상부 림프절이 의심스럽게 보였다. 

 

SUV 수치는 4.6이었다. 직장에만 암이 있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쇄골 림프절까지 전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확인을 위해 조직검사까지 했다. 결과는 다행히 암세포가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당연히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담당 교수님의 설명은 예상과 달랐다.

“조직검사에서 암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실제로 암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암이라는 것도 아니고,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게는 그 애매함이 오히려 더 두려웠다.

‘그러면 나는 전이가 된 것일까, 아닌 것일까?’

 

하지만 치료를 결정해야 했다. 의료진은 쇄골 림프절까지 암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치료하기로 했다. 그렇게 표적치료제인 세툭시맙을 포함한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나는 다시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을 안은 채 2025년 3월 17일부터 FOLFIRI와 세툭시맙을 이용한 치료를 받았다. 

수술 전까지 12차례의 항암치료를 이어갔다.

항암치료 중 나를 특히 힘들게 했던 것은 세툭시맙의 부작용인 피부발진이었다.

얼굴과 피부에 발진이 심하게 올라왔다. 거울을 보기 싫은 날도 있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밖에 나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그때 담당 교수님이 내게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세툭시맙 치료에서는 피부발진이 심하게 나타난 환자에게서 치료 효과가 좋은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으니 너무 낙담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당시에는 솔직히 위로로만 들렸다. 얼굴을 뒤덮은 발진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그것이 치료가 잘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말을 쉽게 믿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견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검사 결과를 확인했을 때 교수님의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선행항암치료 후 암은 약 90% 줄어 있었다. 처음에는 무섭게만 느껴졌던 종양이 치료에 크게 반응한 것이다. 걱정했던 쇄골 림프절 역시 치료 후 활동성이 낮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심한 피부발진 때문에 밖에 나가는 것조차 싫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정말 약이 듣고 있었구나.’

 

괴롭기만 했던 부작용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 순간이었다.

암은 내 몸만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도 조금씩 빼앗아 갔다. 하지만 동시에 치료가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 치료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항암치료 후에는 직장과 골반에 25차례, 왼쪽 쇄골상부 림프절에 5차례의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나는 지방에 살고 있었고 치료는 삼성서울병원에서 받았다. 평소에도 검사와 진료가 있을 때마다 지방에서 서울까지 오갔지만, 방사선치료는 거의 매일 받아야 했다.

 

결국 병원 근처에 작은 방을 한 달 동안 구해 지냈다.

아침이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이 되면 같은 생활이 반복됐다.

그때 유난히 집이 그리웠다.

 

가족과 밥을 먹는 것, 내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하는 것. 너무 당연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일들이 치료 중에는 가장 그리운 일이 되었다.

2025년 10월 15일에는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직장을 약 18cm 절제했고 장이 회복되는 동안 사용할 임시 장루도 만들었다.

 

처음 내 배에 만들어진 장루를 보았을 때의 감정은 지금도 잊기 어렵다.

배변을 장루주머니를 통해 해야 했고, 음식과 외출에도 늘 신경을 써야 했다. 내 몸인데도 이전과 전혀 다른 몸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수술 후 병리 결과는 큰 희망을 주었다.

살아 있는 암세포는 1~5% 정도만 남아 있었고, 제거한 림프절 16개에서는 암세포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절제면도 깨끗했다.

‘ypT2 N0, R0.’

 

예전에는 뜻조차 몰랐을 글자가 내게는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처럼 느껴졌다.

수술 후에도 4차례의 보조항암치료를 더 받았다. 수술 전 12차례와 수술 후 4차례, 모두 16차례의 항암치료였다.

 

2026년 2월, 마침내 항암치료가 끝났다.

하지만 마지막 큰 과정이 남아 있었다.

 

4월 29일 장루복원수술을 받았다. 이제 정말 큰 고비는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수술 후 혈변과 고열이 나타났고 복벽 안에 6cm가 넘는 혈종이 생겼다.

결국 부분마취 상태로 혈종 제거수술을 다시 받아야 했다.

 

차가운 수술방에 누워 있는데 의식은 너무나 또렷했다. 의료진의 말소리와 수술 도구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전신마취 때처럼 눈을 감았다 뜨면 끝나는 수술이 아니었다. 내 몸에서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두려웠고 아팠다.

‘언제 끝날까.’

그 생각만 반복했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정신이 또렷한 채 두려움과 고통을 견뎠던 시간은 긴 치료 과정에서도 가장 힘든 기억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다행히 이후 몸은 빠르게 회복됐다.

 

그러나 장루를 복원했다고 곧바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복원 후 약 한 달 동안은 하루에 열 번 가까이 화장실을 가는 날이 많았다. 한 번 다녀와도 곧 다시 신호가 왔고, 외출할 때는 가장 먼저 화장실 위치부터 확인해야 했다.

 

‘갑자기 신호가 오면 어떡하지?’

평생 한 번도 걱정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몸은 조금씩 적응했다.

걷기부터 시작했고, 다시 계단 운동을 했다. 어느 날에는 다시 달려 보았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직장암 수술과 장루생활, 추가 항암, 장루복원수술과 혈종 제거수술까지 겪은 내가 다시 내 두 발로 달리고 있었다.

숨은 찼지만 웃음이 났다.

 

‘내가 다시 뛰고 있구나.’

 

그날은 거리도 속도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배변 기능도 점차 좋아졌다. 특히 2026년 8월부터 눈에 띄게 안정됐고, 지금은 대부분 아침에 한 번, 저녁에 두 번 정도 화장실을 간다.

 

이제는 화장실 걱정 때문에 외출을 포기하지 않는다. 출근도 하고, 운동도 하고, 가족과 자유롭게 밖에 나갈 수 있다.

 

7월 추적검사에서는 CEA 0.65, CA19-9 2.06으로 종양표지자도 매우 낮게 유지됐고, CT에서도 새로운 재발이나 전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정기검사를 앞두면 긴장한다. 몸에서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면 순간적으로 ‘혹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잃고 싶지 않다.

 

2026년 9월, 나는 약 1년 6개월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 복도를 걷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수업을 했다. 예전에는 너무 평범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치료 전에는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동안 내가 가장 돌아가고 싶었던 곳은 결국 그 평범한 일상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출근하는 것. 아이들과 웃는 것. 화장실 걱정 없이 외출하는 것. 내 두 발로 걷고 달리는 것. 가족과 밥을 먹는 것. 그리고 내일의 일을 자연스럽게 계획하는 것.

 

암은 내 삶에서 많은 것을 가져갔다.

피부발진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야 했고, 지방에서 서울까지 수없이 병원을 오갔다. 가족과 떨어져 병원 근처에서 생활했고, 장루를 달고 지냈으며 하루 열 번씩 화장실을 다녔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정신이 또렷한 채 두려움과 고통을 견뎌야 했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을 지나며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평범한 하루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다시 직장에 다니고, 운동을 하고, 가족과 웃으며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요즘 내게 가장 감사한 말은 아주 평범한 말이다.

 

“오늘도 별일 없었다.”

 

예전에는 아무 의미 없이 지나쳤던 말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하루가 없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괜찮다. 아프지 않고, 가족과 함께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긴 치료 끝에 내가 되찾은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런 평범한 하루였다.

오늘도 별일 없었다.

 

그래서 참 좋은 하루였다.


 

 

※ 이 글은 대장암 환우 카페 ‘암행권’ 회원 어피치님의 치료일기에서 발췌했습니다. 

치료 경과와 검사 결과는 원문 작성 당시인 2026년 9월을 기준으로 합니다.

작성 2026.10.20 09:18 수정 2026.10.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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