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악산할머니 보살 (제공=이설신당) |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자리한 이설신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상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설악산할머니 보살’이라는 이름에서 떠올렸던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 대신, 앳된 외모에 환한 미소를 띤 여성이 취재진을 맞이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삶과 무속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도 꾸밈없고 솔직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게 말을 건넬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 그것이 이설신당에서 처음 마주한 인상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신당을 찾는다. 사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흔들려서, 앞으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다. 때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마음속에 오래 묻어두었다가 조심스럽게 꺼내놓기도 한다. 설악산할머니 보살은 그런 사람들을 맞이하는 자신의 공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의 걱정이나 고민을 점으로 살펴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알려드리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신당은 미래를 묻는 곳인 동시에 현재를 이야기하는 곳이다. 무엇이 일어날지 알고 싶은 마음도 중요하지만,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이해하고 앞으로의 선택을 고민하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무속인의 길을 걷게 된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조금씩 드러난다.
▲ 제공=이설신당 |
“어릴 때부터 마음 한편에 있었어요. 언젠가 내가 이 길을 가게 될까 하고요.”
설악산할머니 보살의 삶에는 어린 시절부터 무속과 연결되는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다. 강원도 인제의 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친할머니가 무속인이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자랐다.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다는 이야기도 가족에게 들었다. 예정일보다 일찍 출산 과정이 시작됐고, 탯줄이 감기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몸이 약했던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가 발바닥에 침을 놓아주기도 했다. 당시 할머니는 그러한 방식으로 아픈 사람들을 돌보던 무속인이었고, 주변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어린아이에게 할머니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당시 TV에서 방영되던 미스터리 프로그램들을 떠올렸다. 무속과 관련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어린 마음에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무당이 대물림된다면 나중에는 누가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일곱 살쯤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문득 ‘그러면 내가 하면 될까?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물론 어린 시절의 생각이 곧바로 현실이 된 것은 아니었다. 성장하면서 미용 분야를 공부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부모와 떨어져 생활했다. 시골에서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손빨래를 하며 학교에 다녔던 시간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일들이 적지 않았다.
이후 그는 결혼해 두 아들을 얻었지만, 결혼생활은 결국 이혼으로 끝났다. 아이들을 키우며 자신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간호조무사와 피부관리 분야의 일을 배워 병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고, 피부과 총괄 실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임신 중에는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보조교사로 일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삶을 이어갔다.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단순히 지나간 고생으로만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무속인의 길에 들어서기 전까지 이어졌던 삶의 풍파를 지금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손님들이 저를 찾아오시잖아요. 그런데 제가 아무런 풍파도 겪어보지 않았다면 그분들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요. 저도 여러 가지 일을 겪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시간들이 저를 이 길로 이끌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삶은 때로 지나온 뒤에야 의미를 드러낸다. 그때는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의 흐름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가 자신의 지난날을 이야기하는 목소리에는 아픔을 과장하거나 특별한 운명으로 포장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느껴졌다.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에 찾아온 변화, 그리고 신어머니와의 인연
무속인의 길은 그가 오랫동안 준비해 계획한 진로와는 조금 달랐다. 병원에서 일하던 어느 날부터 환자들과 대화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피부 상담을 하다가도 어느새 상대방의 가족 문제나 개인적인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게 됐다. 단순히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차원을 넘어,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경험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말이 툭 나오는 거예요. 이분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나중에 다시 오셔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시기도 했어요. 피부 상담을 해야 하는데 어느새 인생 상담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는 이러한 변화를 자신이 모시는 신령과의 인연이 드러나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자신의 상황을 의논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때 연결된 인물이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신어머니였다. 나이가 많은 신어머니를 그는 친근하게 ‘신 할머니’라고 부른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그가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겪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신 할머니에게 점사를 보러 다녔고, 신 할머니가 그에게도 한 번 데려오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속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거나 관련 정보를 알아보던 상황이 아니었다. 눈앞의 생계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벅찼다.
“저는 원래 그런 곳을 찾아다니던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냥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빴거든요. 그런데 계속 한번 가보라고 하니까 궁금해지더라고요. 막상 가보니 무섭다기보다는 그냥 할머니 같았어요.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죠.”
이후 병원에서 일하던 중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경험하고 신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묻자, 신 할머니는 이제 때가 온 것 같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는 그 말을 계기로 신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무속인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신내림을 받은 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린 것은 아니었다. 신어머니는 춘천에 있었고 자신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점사를 배울 시간도, 넉넉한 자금도 없었다. 처음에는 작은 신단과 부채, 방울을 갖추고 손님을 맞이했다. 오피스텔에서 시작한 활동은 이후 지금의 이설신당으로 이어졌다.
“처음부터 여유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배울 시간도 부족했고, 직장도 다녀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이어온 것 같아요.”
그에게 무속은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뛰어든 새로운 세계라기보다, 이미 살아온 삶의 연장선에서 마주한 길에 가까웠다. 직장인으로 살아온 시간도, 결혼과 이혼을 거치며 겪은 어려움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순간도 모두 지금의 자신을 구성하는 일부가 됐다.
“과거를 맞히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사람에게 필요한 이야기예요.”
이설신당의 상담 방식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를 살피는 일이다. 처음 점집을 찾는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과거를 얼마나 정확하게 맞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겪었던 일을 상대방이 알아맞혀야 비로소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일은 쉽지 않다. 상대가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다만 그는 과거를 확인하는 데 상담의 시간을 모두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과거 이야기를 많이 궁금해하세요. 그런데 과거 이야기만 듣고 돌아가면 정작 궁금해서 오신 문제는 남아 있잖아요. 저는 지금 이분이 왜 오셨는지, 무엇이 가장 고민인지 그 부분을 조금 더 중요하게 봐요.”
그가 주로 살펴보는 문제는 금전과 사업, 연애와 결혼 등 일상에서 직접 부딪히는 고민들이다. 상담을 시작할 때 상대방의 상황을 살펴보고, 자신이 모시는 신령을 통해 떠오르는 단서들을 풀어서 설명한다고 한다. 과거의 중요한 사건을 짚어보되, 대화의 중심은 현재의 고민과 앞으로의 방향에 둔다.
그는 자신이 이런 현실적인 부분을 비교적 잘 살피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꾸준히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는 점에서도 자신이 지향하는 상담 방식에 의미를 느낀다고 말한다. 물론 점사에 대한 경험과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일방적으로 내세우기보다, 방문자가 실제로 알고 싶어 하는 문제를 함께 살펴보는 태도다.
이러한 생각은 운영 방식에도 이어진다. 그는 손님을 금전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이혼 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자신 역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해야 했다. 신당을 운영한다고 해서 생활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 나가서 일하면 되잖아요. 제가 다른 일을 해서 벌고, 제 일을 하면 되는 거예요. 사람을 돈으로만 보지는 않으려고 해요. 손님이 돈이 없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를 다르게 대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는 무속인의 길을 걸어온 지 햇수로 8년째에 접어들었지만,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일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한 채 활동해왔다. 어머니는 비교적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고, 인터뷰 당시 아버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신당을 이어온 시간이었다.
화려한 홍보나 적극적인 영업보다는 자신을 믿고 찾아오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상담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운영의 기본이다.
신령마다 주력 분야가 다르듯, 사람마다 마주하는 고민도 다르다
무속인마다 점사를 보는 방식이 다른 이유를 묻자 그는 의료 분야의 전문 진료과를 예로 들었다. 병원에서도 여러 분야를 두루 살펴볼 수 있지만,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진료하는 전문의가 있듯 무속인 역시 자신이 모시는 신령의 특성에 따라 주력 분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의사도 여러 가지를 볼 수는 있지만 각자 전문 분야가 있잖아요. 무속인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여러 신령을 모시더라도 누구를 중심으로 모시느냐에 따라 조금씩 특화되는 부분이 있는 거죠.”
그는 자신이 중심으로 모시는 신령을 할머니 신령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넋과 관련된 신령의 특성이 자신의 점사 방식과 연결된다고 믿으며,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의 흐름을 살펴보는 데 주력한다고 말한다. 친할머니가 과거 신침으로 이름을 알렸다는 이야기도 자신의 무속적 인연을 설명할 때 빼놓지 않는다.
그에게 무속은 단순히 하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세계가 아니다. 각자가 모시는 신령과 경험, 활동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는 그가 이해하고 경험하는 무속의 세계에 대한 설명이며, 모든 무속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자주 궁금해하는 또 다른 질문은 귀신을 실제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이 질문에도 무속인마다 경험이 다르다고 답했다.
“저는 일상생활을 하다가 원하지 않는데도 계속 보이는 편은 아니에요. 제가 보고 싶어하면 보이죠. 뭔가 기운이 이상하다고 느껴지거나 문득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어요.”
그는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뒤 이런 질문을 더욱 자주 접하게 됐다고 한다. 유튜브와 다른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평소 무속에 관해 궁금해하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무속인이라는 직업을 둘러싼 호기심은 많지만 실제 경험과 생각을 직접 들을 기회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 온라인 활동은 그에게 새로운 소통의 통로가 되고 있다.
“결혼할 사람이 없다고 했던 분이, 어느 날 결혼 소식을 전해왔어요.”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래 기억에 남는 사연도 생긴다. 설악산할머니 보살은 기뻤던 기억과 안타까웠던 기억을 하나씩 들려줬다.
먼저 떠올린 사람은 결혼을 간절히 원했던 30대 중후반의 여성이었다. 당시 그 여성은 교제 중인 사람도 없었고, 새로운 만남이 예정돼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결혼을 언제 할 수 있을지 알고 싶다며 계속해서 물었다고 한다.
“지금 만나는 사람도 없고 소개를 받는 것도 아닌데 결혼을 언제 하느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저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없으니까 어렵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래도 꼭 봐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그는 점사를 살펴본 뒤 특정 시기에 인연이 들어올 것 같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여성에게서 연락이 왔다. 결혼을 하게 됐다는 소식과 함께 사진도 보내왔다고 한다.
“그때 정말 신기했어요. 아무도 없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인연이 생겨서 결혼하게 됐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선생님 덕분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그의 목소리에는 당시의 놀라움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상담을 통해 전한 이야기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기쁜 소식으로 돌아왔다는 경험은 그에게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반면 마음 한편에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는 사례도 있다. 그는 과거 심각한 행동 변화를 보이던 여성을 가족들이 돕고자 했던 일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가족들은 당사자가 평소와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고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자 여러 방법을 찾았고, 결국 굿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의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당사자가 갑자기 사라져 경찰이 수색에 나서는 등 큰 혼란이 벌어졌으며, 이후 병원에 입원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가 전한 이야기는 당시 가족들이 겪었던 혼란과 어려움을 보여준다. 동시에 정신적·행동적 이상이 나타날 때는 무속 상담만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의료기관의 전문적인 평가와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생각하게 한다. 무속 의식은 의료적 진단과 치료를 대신할 수 없으며, 건강과 안전에 관한 문제는 적절한 전문적 도움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사람들의 사연을 듣는 일은 때로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는 일이지만, 때로는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접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신내림은 경계해야 해요. 이 일을 한다면 책임도 따라야 하니까요.”
인터뷰에서는 무속업계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 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설악산할머니 보살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무분별한 신내림을 꼽았다. 충분한 고민이나 준비 없이 금전적인 이유로 신내림을 권하거나,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하고 중단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무자비하게 신내림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돈만 있으면 해주거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느껴요. 할 거면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그는 무속인의 길이 한 사람의 삶과 생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쉽게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관행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 역시 처음부터 여유로운 환경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기에, 무속인의 활동이 단순히 신당을 차리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세금과 사업 운영에 관한 부담도 언급했다. 그는 세무사를 통해 수입을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하며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소득에 비해 세금 부담이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었고, 사업 운영 과정에서 비용을 인정받는 범위가 제한적이라고 느끼는 점은 어려움으로 꼽았다. 코로나19 당시에도 자신이 체감하기에는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저는 얼마를 벌든 가능한 범위에서 깔끔하게 신고하고 싶어요. 그런데 실제로 번 돈에 비해 세금 부담이 크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코로나19 때도 사업자로서 충분히 지원받지 못했다고 느꼈고요. 그런 부분은 조금 아쉬웠어요.”
그는 이러한 운영상의 고민을 거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상호를 정리하고 이설신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무속업계 전체의 세무 제도와 지원 기준은 구체적인 법령과 업종 분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그의 경험은 현장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느끼는지 보여준다.
무속에 대한 사회적 시선 역시 그가 생각하는 변화의 대상이다. 그는 무속인이라는 직업을 둘러싼 선입견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느끼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의 일을 어떤 태도로 이어가느냐라고 말한다. 자신은 수입이 많지 않더라도 가능한 범위에서 정직하게 신고하고, 사람을 돈으로만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화려한 수식어보다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산을 사고 싶어요.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제 공간을 만들고 싶거든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지금처럼 꾸준히 활동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자신을 믿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 한 상담을 이어가고 싶고, 최근 시작한 방송 활동도 조금씩 넓혀가고 싶다는 것이다.
“거창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에요. 지금처럼 저를 믿고 찾아오시는 분들과 계속 만나고 싶어요. 다만 방송을 시작했으니까 온라인에서도 더 많은 분과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조금 더 먼 미래의 꿈도 들려줬다. 언젠가 열심히 돈을 벌어 산을 사고 싶다는 것이다. 단순히 넓은 땅을 소유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때로 마음을 많이 소모하게 하고, 그럴 때 산에 올라 기도하고 조용히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 큰 위로가 된다고 한다.
“나중에는 산을 사서 큰 기도터를 만들고 싶어요.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저도 지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산에 가서 기도하고 오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언젠가는 그런 공간을 마련해서 조용히 기도하며 지내고 싶어요.”
그의 꿈에는 자녀들에 관한 마음도 담겨 있었다. 친할머니로부터 이어진 무속과의 인연을 자신의 세대에서 잘 감당하고, 자녀들에게 같은 길이 이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도록 제가 열심히 기도하고 제 역할을 잘하고 싶어요. 나중에는 제 아이들이 이 길을 걷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싶어요.”
그에게 산은 쉼의 장소이자 기도의 공간이며,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삶의 무게를 차분히 내려놓고 싶은 곳이다.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방향을 함께 살피는 일도 결국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과 떨어져 있지 않다.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사람에게도 때로는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공간이 필요한 법이다.
▲ 제공=이설신당 |
“꼭 점을 보지 않아도 괜찮아요. 누구에게도 못 한 이야기를 하러 오셔도 돼요.”
인터뷰의 마지막, 그는 신당을 찾는 일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들려줬다. 많은 사람이 어려운 일을 충분히 겪고 난 뒤에야 점집을 찾는다고 한다. 이미 여러 차례 좌절을 경험하고,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느낄 때 비로소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황을 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저는 오히려 힘들 때 오셨으면 좋겠어요. 다 겪고 나서 오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때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는 자신이 다른 무속인들과 달리 무속인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실제로 방문객들로부터 이웃 언니나 이모처럼 편안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고 한다. 어린 손님들에게는 이모나 아줌마처럼 느껴진다는 말도 듣는다고 덧붙였다.
그런 친근함 때문인지 꼭 점사를 보기 위해서만 신당을 찾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나고 싶어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저를 보러 오시는 게 아니라 그냥 힘든 이야기를 하러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누구한테도 말할 데가 없어서 오시는 거죠. 꼭 점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편하게 오셔서 이야기하셔도 괜찮아요.”
그는 무속인이라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때로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며, 때로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으로 곁에 있는 것. 자신이 이설신당에서 이어가고 싶은 일은 그런 모습에 가깝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마주했던 그의 환한 미소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자신의 삶을 꾸밈없이 이야기하고, 질문 하나하나에 친절하게 답하며, 낯선 취재진에게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던 모습 때문이었다. 무속이라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분야를 취재하면서도, 그 공간에서 마주한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마음이었다.
누군가의 인생에 언제나 명확한 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언제쯤 어려움이 끝날지 누구도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순간이 있다. 이설신당이 지향하는 공간 역시 미래를 묻는 곳을 넘어, 잠시 멈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자리인지 모른다.
“힘들 때 찾아오세요.”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는 그가 걸어온 시간과 앞으로 이어가고 싶은 삶의 방식이 함께 담겨 있다. 자신의 풍파를 지나 다른 사람의 고민 앞에 앉게 된 설악산할머니 보살. 그가 이설신당에서 이어갈 이야기는 앞으로도 사람들의 사연과 함께 조금씩 쌓여갈 것이다.
이설신당의 상담 및 운영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네이버 플레이스(장소 - 네이버지도) 및 카카오톡 채널(카카오톡채널 - 설악산할머니보살)과 유튜브 채널(설악산할머니보살 - YouTube)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