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초당작란
위목당작송
란유향풍원
송한불개용
해석
풀이 되려면 난초가 되어야하고
나무가 되려면 소나무가 되어야지
난초의 그윽한 향기는 바람에 멀리 날고
소나무는 추워도 그 용모를 고치지않는다.
예술적 형상화와 철학적 고뇌
이 시는 단순한 자연의 예찬이 아니다. 이는 '존재의 정점'을 향한 갈망이다. 풀로 태어났다면 천박한 잡초가 아닌 고고한 난초가 되어야 하고, 나무로 태어났다면 비바람에 꺾이는 나무가 아닌 변치 않는 절개를 지닌 소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예술가로서의 고결한 자기 규정이다.
이 시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극치다. 겉으로는 난초의 부드러움과 향기(예술적 자유)를 좇지만, 내면에는 소나무의 강인한 뿌리(역사적 고뇌와 절개)를 깊게 박고 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로서, 스스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이 짧은 대구(對句) 속에
난초는 스스로 향기롭기 위해 피어날 뿐이고, 소나무는 스스로 푸르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예술은 세상의 평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무엇인가'를 증명하는 엄숙한 의식이다.


